브래지어의 역사

기타 2008.09.13 07:53

브래지어의 역사



 
수세기 동안 여성의 가슴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가슴이 풍만하면 풍만한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여성의 가슴 사이즈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애마부인이란 영화로 풍만하고 터질 것 같은 여성의 가슴이 섹시와 에로틱의 대명사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끊임없이 여성의 가슴은 남성에게 에로틱과 선정성 그리고 예술적 승화란 가치 앞에서 오락가락 하였다. 결국 여성들은 가슴 성형을 하기에 이르렀고, 개미허리의 굴곡에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성들이 인기를 끌었다.
 
요즘 섹시란 이름을 내세워 유명해진 여가수들도 모두가 하나같이 가슴의 융기를 드러내고, 선정적인 춤을 방송에서 보여주고 있으면서 여성패션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도 여성의 가슴이 패션 산업의 목표가 되기도 하고 완전히 무시되기도 했었는데 과거에는 가슴을 가릴 것인가? 아니면 노출할 것인가? 이것이 가장 큰 관건이었다고 한다.

기원전 2500년 크레타 섬의 미노아 여자들은 드러낸 가슴을 치켜 올려 옷 밖으로 드러내는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다. 또한 고대의 그리스와 로마의 여자들은 가슴에 밴드를 감아 가슴 사이즈를 조금이라도 작게 보이려고 했었다.
 
이 패션은 몇 세기 후에 성당의 신부들에 의해 다시 거론된다. 실제로 그리스에서 4,500년 전에 탄생한 브래지어는 남자들이 여성의 몸을 자신들이 좋아하는 형으로 만들 목적으로 탄생된 옷이다.

19세기 가슴을 풍만하게 보이기 위해 고안된 유방 패드는 고래의 수염을 코르셋 속에 넣었던 것이다. 그 후 프랑스 여자들은 그 모양과 크기에 따라 레몬 가슴이라 불렸던 최초의 고무 가슴 패드를 사용하게 되었다.
 
 1913년 세련된 여자들은 너무 꽉 조여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고래수염과 끈으로 만든 코르셋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 코르셋은 몸을 조이는 것의 불편함보다도 외견상의 문제가 더 컸다.
 
값비싼 이브닝드레스에 비치는 고래수염을 넣은 코르셋이 보이는 까닭에 여자들은 손수건이나 리본 레이스를 이용한 짧은 브래지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메리어 야코브스는 레이스를 이용한 브래지어를 만들어 친구에게 선물했다. 그런데 이렇게 엉성하게 만든 브래지어를 사겠다는 여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녀는 자신이 고안한 디자인을 미국 특허청에 제출해서 특허를 따낸 후에 워너 브라더즈 코르셋 회사에 그 특허권을 1500달러에 팔아버렸다.

메어리 야코브스의 브래지어 디자인은 이후에도 발전을 거듭하여 1920년 신축성이 있는 천으로 고안되었으며 1930년 끈 없는 브래지어가 탄생했다.
 
그러나 여성들의 가슴 사이즈는 모두가 각각이었기에 이후 사이즈별 브래지어가 탄생되었다. 그런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러시아계 유태인 아이더 로젠탈이다.

1920년대 가슴이 작은 소녀에서 큰 가슴을 소유한 여자까지 다양한 사이즈의 브래지어가 출시되었고 여성들의 인기를 얻었다. 그 이후 1960년 젊은 여성들은 여성해방의 상징이라고 하여 브래지어를 모두 소각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물론 민주사회에서 브래지어를 하던 안 하던 그것은 자유이다. 성해방이 꼭 남자들이 하지 않는 브래지어를 소각한다고 해서 별다른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으로서 인정받을 때 진정한 성해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남녀평등, 동등한 대우, 여성 성적 자유 꼭 이런 것들만 성해방은 아니다. 성해방은 성에 관한 스스로가 자유로워야 하며 성을 책임지는 것이 자유라 생각한다.
 
책임감 없이 저질러지는 섹스와 그로 인한 미혼모들 앞에서 바람둥이는 진정한 자유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의 성해방은 여성도 성에 대한 책임의식이 따를 때 진정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지, 과거 남성들이 해왔던 전철을 밟으면서 외도를 하고, 성 파트너를 여러 차례 바꾼다고 성해방은 아니다.
 
브래지어는 여성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지 ‘남성은 하지 않으면서 왜 여성만 해야 하느냐!’ 는 아주 적은 일부의 주장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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